본문 바로가기

Et Cetera, Et Cetera, Et Cetera

미국 작가협회 파업, 진중권, 미드 그리고 저작권

미국 작가 협회(Writer's Guild of America)가 한 달 째 파업을 계속하므로써 중단된 미드의 방영을 기다리는 팬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사전 제작 분이 충분한 일부 드라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드는 현재 재방송 중이며 히어로즈처럼 조기 종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파업의 배경에는 비디오와 DVD 시장의 형성 초기에 극작가들이 이 시장의 성장성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영화/드라마 제작사들과 협상에서 불리한 계약으로 엄청나게 커진 2차 판권 시장의 수익 배분에서 주인이 아닌 들러리 취급을 받고 있다는 불만과 앞으로 시장의 대세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인터넷 다운로드 시장이라든지 iPod를 이용한 동영상 스트리밍(streaming) 시장에서 좀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는 흔한데 뉴욕에는 드문 게 있다. 서울에 살 때는 길을 가다보면 각종 노래 테이프나 비디오, CD 복사판을 파는 좌판 상인들이 많았다. 이른바 해적판이라는 불법 복제물들인데 가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경찰이 이런 것 만드는 공장을 급습해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태우는 광경이 나온다. 단속을 하기는 하는 모양인데 강남역만 가봐도 대낮에 버젓이 내놓고 파는 상인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면 단속이란 게 결국 보여주기 위한 단속만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을 하곤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뉴욕으로 이사를 온 후 뜻밖에도 한국인이 많이 다니는 맨해튼의 32번가 근처 지하철역에서 불법 복제 DVD를 파는 상인을 보았다. 상인은 다행히 한국인이 아니고 히스패닉 아저씨였는데 그 후로 그 역에 가면 사람은 바뀌는데 같은 위치에서 최신영화의 캠코더 버전의 불법 복제물들을 팔고 있었다. 한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에 그런 상인이 있다는 게 우연인지 아니면 사주는 사람을 따라서 온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저작권 침해를 도둑질과 같다고 생각하는 미국에서는 드물고 신기한 일일 정도로 이런 상인이 드물다.

그 덕분에 미국에는 영화 티켓 판매 수익보다 큰 DVD 대여 시장이 있고 이보다 몇 배 큰 DVD 판매 시장이 있다. 또한 아직은 비디오 시장도 DVD 시장보다도 더 크다고 하는데 이 비디오, DVD 시장의 규모가 한화로 45조 규모나 된다고 한다.(참고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은 200조 정도) 반면에 한국에서는 불법 복제 시장도 한물 지나가고 불법 다운로드 시장이 성행이다. 한국 영화인 협회 측 자료를 보니까 한국영화 총 제작비가 4000억 원 규모인데 불법 다운로드 피해액이 3000천억 정도라고 한다. 호환마마 보다도 무서운 불법 다운로드의 파도가 한국 영화 판권시장을 삼키고 있는 중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얼마 전에 디워로 진중권과 네티즌들이 뜨거운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 논쟁이 처음에는 심형래라는 비주류 영화인 대 충무로의 주류 영화인의 대결이었지만 디워가 서사와 주제의식이 부재하므로 평론의 가치도 없다는 진중권의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으로 진중권 대 디워를 옹호하는 네티즌의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진중권은 나중에 ‘영상 시대의 인문학’ 이라는 글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 하는데 요약하자면 영상 문화 상품이라는 것이 결국은 말로 전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과학의 힘을 빌어 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든 것이므로 인문적-기술적 담론의 토대가 없을 때, 이미지 산업은 그저 손으로 그림만 그려 납품하는 하청에 불과하며 인문학의 위기를 맞아 영상시대에도 인문학의 가치는 여전다고 하였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결론에서 문화에서 ‘돈’부터 떠올리는 천박한 머리로는 돈도 제대로 벌 수 없다고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심형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의 취향을 안다면 이해가 안 될 일도 아니지만 문화를 돈과 연결시키는 자본주의적 천박함이 사실은 그가 성공적인 예로 든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의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할리우드의 영상 산업이 인문학적 담론을 기초로 나온다면 그 인문학적 담론의 생산해내는 미국 작가협회가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상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를 원한다면 인문학적 상상력은 사실 돈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인문학이 위기인 상황이라면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천박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인문학을 사는 사람들이 ‘돈’을 잘 번다면 ‘돈’을 벌기위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몰릴 것이고 이들은 더 창의적이고 지적인 (또한 잘 팔리는) 작품을 만들 것이다.

미드와는 달리 한국 드라마가 획일적인 소재와 상투적인 플롯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연애 말고는 사회 경험도 없는 20대 여성 작가들에게서 상상력만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로서 문학적 재능을 겸비한 다양한 연령의 미국 작가처럼 글을 쓰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의 인문학도 살아나고 인문학적 자산이 문화적 경쟁력으로 승화될 수 있을까. 멀리 볼 것도 없다. 당장 한국 작가들을 미국 작가만큼 대우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한국의 영상 산업계는 불법 복제와 불법 다운로드 문화 때문에 ‘돈’을 노력한 만큼 못 벌고 있으므로 투자할 자산이 별로 없다. 협상 기술상의 변수가 있겠지만 미국 작가협회는 아마 미국 제작자 협회로 부터 상당 부분 양보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배우들과 국민들 심지어는 외국 작가협회에서도 편을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미국의 영화 제작자들은 철저히 보호받는 저작권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양보할 여력이 있다.

언젠가는 한국의 드라마, 영화가,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미국과 전 세계를 휩쓰는 것을 보고 싶다. 디워를 응원했던 많은 네티즌들도 사실은 애국심 논쟁이 거북하긴 하지만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제작자들의 저작권을 더 보호해줘야 하고 그 들이 돈을 더 벌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해도 되고 많은 인재들이 작가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한국에서 작가 협회의 파업소식이 들려와도 반가울 것이다.